'가족적'이라든가, '형제애'라든가, '자매 같은'이라든가 하는 표현에 접할 때마다, 나는 의문한다. 그것이 과연 온당한 표현일까 하고.
두산그룹 형제들이 모두 기소당한데 이어 그룹 전체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었다는 보도다. 형제간의 분란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당해야 하는 수모는 이제 겨우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평생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도 이번 분란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빤한 자해였다. 자해가 될 줄 몰랐을까? 몰랐을 이치가 없다. 먼저 시작을 한 셈이 되는 박용곤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어쨌거나 대그룹 회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나이는 일흔쯤. 그만한 이치를 모를 사람이 아니다. 그를 결국 그런 지경에까지 몰아간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들은 빤한 그 자해를 피해갈 수 없었다. 명색 형제 사이의 증오는 그만큼 치열했다.
있는 사람들의 재산 다툼은 두산의 경우가 물론 처음은 아닌데, 비단 재산 다툼 때문만은 아니다. 사소한 감정 다툼으로 말미암아 등을 돌리는 가족관계는 흔하다. 언젠가,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 이야기가 드라마로 며칠 동안에 나눠 방영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재산이니 하는 것도 없는 그 집안은 사소한 감정 다툼으로 말미암아 형제, 숙질, 수숙, 부자 사이가 정말 속속들이 망가졌다. 불행한 경험인가 잘 모르겠는데, 내 주변에도 그 내용을 알 만큼 아는 집안 치고 가족관계가 '가족적'인, 형제나 자매 사이가 '형제애'나 '자매애'가 넘치는, 그토록 돈독한 관계는 드물다. 내 집안만 해도 그렇다.
정치인이니 하는 부류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을 젖혀두고 본다면, 지금 나에게 거북스러운 대상은 내 형제들뿐이다. 어쨌거나 가족이니까 더러나마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 만남이 늘 버석버석하다. 버석버석하지 않은 척하려 하니까 더 버석버석해진다. 화목한 가족은 나에게 비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희생을 다 바친다 할지라도 내 생애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룩하여 내 자식이나 조카 세대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여러 면모에서 내 능력에 버거운 노력을 기울인다고 기울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인내가 가장 어려웠다. 최소한의 효용도 기대해볼 수 없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아야 한다 - 스스로 설정한 이런 기준을 지켜내기 위해 정말 이를 악물고 참는다고 참았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까지 참아내지 못했고, 그래서 그 자식, 그 조카들에게 면목없게 된 현실을 버겁게 짊어진 채 내 생의 마지막을 향해 허덕허덕 가쁜 숨 몰아내쉬며 걸어가야만 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은 극복될 수 없다. 지금 내가 수시로 - 하루에도 몇차례씩 - 느끼고 있는 극단적 절망감의 근원은 바로 이것이고, 내 생애에서 나에게 남아 있는 그 시간들에 내가 동의할 수 없게 된 것도 바로 그래서인데, 한번 망가진 인간관계의 수리는 불가능하다.